음식 이야기

이런 김치도 있었네?

광천 선생 2025. 4. 27. 14:57

여러 가지 김치

  김치 없이 식사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우리에게는 김치냉장고가 널리 보급되어 예전만큼 흥성스럽지는 않지만,  김치 담그기는 여전히 큰 집안일입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김치는 담그는 방법과 재료도 다양하고, 별의별 이름들도 많죠.

  김치의 종류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을 정도로 무척이나 많습니다. 어떤 통계로는 60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하지만, 우리집에만 해도 고수로 김치를 만들어 먹고, 배깍두기, 토마토깍두기를 만들기도 하고, 심지어 샐러리로 김치를 만들어 먹기도 하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이렇게 집집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김치를 만들어 먹을  있으니 김치의 가짓수는 무한대로 확장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총각김치는 익히 아는 바지만, 홀아비김치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합니다. 홀아비가 아내 없이 혼자 사는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니 ‘무나 배추 한 가지로만 담근 김치’를 홀아비김치라고 하는 뜻을 알겠습니다. 총각김치는 그 생김새에서 말뿌리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사실은 저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사실이 그렇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을 테고……. 총각김치가 있으니 처녀김치가 있을 법하고, 홀아비김치가 있으니 홀어미김치도 있을 듯하지만 이런 것은 우리말에 없습니다. 하기야 김치는 여인네들이 담그는 것이니까 남정네를 비유한 말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할 테지요.

  무의 잎과 줄기, 또는 배추의 지스러기로 담근 김치 덤불김치라고 합니다. ‘덤불’이 수풀이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니 ‘덤불김치’가 어떤 모양인지도 쉽게 짐작이 갑니다.

  깍두기 비슷한 것으로 섞박지라고 하는 김치도 있습니다. ‘석박지’라고 쓰는 일이 많지만 정확한 표기는 ‘섞박지’입니다. 이 김치는 배추와 무, 오이를 절여 넓적하게 썬 다음, 여러 가지 고명에 젓국을 쳐서 한데 버무려 담은 뒤 조기젓 국물을 약간 부어서 익힌 것입니다. ‘섞어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짐작은 할 수 있습니다. 이문구 선생의 「우리 동네」라는 작품에도 섞박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소리를 거듭 돋고 나서야 마침내 세밑에 이르렀다는 것을 리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와 아울러 마을 사람들에게 빚지는 한 이장이 날이날마다 새벽 방송을 틀고, 연말연시란 말로 섞박지를 담가 가며 성화같이 빚달련을 해온 까닭도 비로소 알 만한 것 같았다.

  직접적으로 ‘섞박지’라는 김치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비유적인 의미로 이 말을 썼지요. 여기에서 ‘섞박지’가 이것저것 섞어서 만들었다는 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름이 무서운 김치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급살김치가 그것입니다. ‘급살(急煞)’이란 ‘갑자기 닥쳐오는 재앙’을 뜻하는 말인데 왜 김치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요? 이것은 달리 벼락김치라고도 하는데 무나 배추를 간장에 절여 당장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김치를 말합니다. 아하! 바로 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붙였나 봅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지가지의 김치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어느 틈엔가 중국 김치에 우리 밥상에서 쫓겨나고, 기무치가 호시탐탐 김치 종주국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요즘, 세계적으로 김치의 위상이 다시 오르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